[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배구조(거버넌스) 혁신에 무게를 싣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변윤재 기자] SK그룹은 최 회장의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 경영 의지를 반영, 지난 2021년 이사회에 최고경영자(CEO) 평가 권한을 넘긴 데 이어 이번에는 사외이사들이 회사 경영 현안을 직접 감독하고, 투자 여부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이사회의 의사결정권을 보다 강력하게 보장하는 셈이다.

기업의 투자와 경영 현안은 CEO, 나아가 총수의 의중이 반영된다. 위험부담이 있다 해도 중장기 비전 차원에서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밀어붙이는 경향이 강했다. 때문에 이사회가 투자, 경영 현안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그룹의 정점인 총수에 대한 감시·견제 수위를 높인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때문에 지금껏 국내 대기업들은 ESG 경영을 강조하면서도 G에는 손대기 꺼려했다. 총수의 리더십 훼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 회장이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면서 재계에서는 그 배경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특히 그룹내 각 계열사의 전문경영인(CEO)들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란 분석과 함께 구체적인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다.

1일 SK그룹은 전날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SK 디렉터스 서밋 2023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서밋에는 14개 계열사 사외이사 대부분이 참석해 'SK 성장을 위한 통찰력'을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사외이사들은 각사 경영진에 대한 견제·감독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이사회 중심 경영이 구축돼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오너 중심 체제로 돌아가다보니 회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영적 판단을 제어하기 어려웠다. 이에 이사회 산하 감사위원회의가 회사 내부 감사기구를 직접 감독해 경영 변수를 사전·사후 관리하는 시스템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또 이사회가 수립한 정책과 규정에 맞춰 경영진·구성원이 투자·경영과 관련해 구체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 시스템도 갖춰나갈 예정이다.

특히 이사회가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서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게 역량을 높일 방침이다. 사외이사들이 신규 사업에 대한 통찰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위험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 감사 기능을 높이기로 했다.

다만 사외이사들 또한 권한이 확대된 만큼 책임도 무거워질 전망이다. 사외이사들은 이해관계자 중심 경영을 구현할 수 있도록 시장과 소통해 회사와 사업 모델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주주·투자자 등과의 소통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일 전망이다. 이들은 서밋에서 구체적 실행 방안 추진,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이사회 중심 경영 강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SK그룹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그동안 각 계열사들이 이사회 중심 경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경영진 견제 및 감독 시스템 등 마련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향후 각 사 경영진에 대한 이사회의 적극적인 견제와 감독 기능을 한층 강화, 거버넌스 혁신을 지속 추진해 이사회가 독립된 최고 의결기구로서 권한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외이사들은 역할 확대를 위해 그룹의 미래 비전과 성장 전략을 '열공'했다. 이들은 그룹 주요 사업인 전기차 배터리와 인공지능(AI) 등에서 글로벌 시장 전망과 계열사별 전략을 살펴보고, 전략∙투자과 관련해 이사회의 역할을 토론했다. 또 그룹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이사회 구성 방향성도 이야기 나눴다.

한편, 이번 디렉터스 서밋은 그룹의 주요 전략회의로 격상, 정례화 됐다. SK그룹은 주요 경영 회의는 확대경영회의, 이천포럼, CEO세미나로, 이를 통해 경영 실적을 점검하고 시장 동향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방안을 모색해왔다. 다만 해당 회의는 내부 구성원이 주축이 된다는 점에서 디렉터스 서밋의 격상은 SK그룹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거버넌스 스토리가 그룹의 경영 철학으로 자리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거버넌스 스토리는 지난 2021년부터 최 회장이 강조해 온 경영 철학이다. 최 회장은 파이낸셜 스토리를 경영 화두로 던진 이후 방법론 중 하나로 거버넌스 스토리를 제시했다. 최 회장은 근본적 혁신(딥 체인지)의 필요성을 환기시켜면서 '질적 성장'을 역설했다.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매출·영업이익과 같은 재무성과를 넘어서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투자자·시장 등 이해관계자가 공감할 수 있는 목표와 구체적 실행계획을 제시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경영 전문성과 투명성이 담보돼야 한다고 봤다.

이에 SK그룹은 거버넌스 스토리를 경영 체계에 녹여왔다. 2021년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하고, 투자 효율성·전문성을 높이고자 이사회에 힘을 실어줬다. 지난해 이사회 산하에 인사위원회·ESG위원회를 신설해 대표이사 평가와 후보 추천, 사내이사 보수 적정성 검토, 중장기 성장전략 검토 등 핵심 경영활동까지 맡겼다.

올해부터는 이사회 권한이 더욱 커진다. 독립된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서 권한과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이사회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혁신하기로 하고 서밋을 통해 그룹 경영 현안을 논의하기로 해서다. 거버넌스 스토리를 고도화할 포석을 놓은 것이다.

최 회장은 '거버넌스 스토리의 미래'를 주제로 직접 사외이사들과 패널 토의에 참여, 힘을 실어줬다. 그는 "이사회는 CEO가 균형감이 있는 최적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경영활동 전반에 대한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주는 활동을 해 나가야 한다"면서 "이사회가 임원, 구성원들과의 소통 활성화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회사의 문제와 불편을 해결하고 발전을 효율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재원 수석부회장도 "오늘 서밋은 SK 지속가능성장 스토리를 시장에 어떻게 전달하고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경영에 담아낼지 논의하는 자리"라며 "사외이사들께서 경영진 견제∙감독 뿐 아니라 그룹 주요사업을 더 큰 그림에서 이해하고 의견을 적극 개진함으로써 경영진을 돕는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이 지배구조 혁신을 강조하는 배경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사회적 가치를 시작으로 ESG 경영에 이르기까지 선한 영향력 확대의 연장선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 회장이 최근 후계 승계에 대한 생각을 밝힌 점을 들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방안까지 포함해 안정적 지배구조를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최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후계 승계 계획이 없다면서도 '다양한 방안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이사회의 독립성이 강해질 경우 건강한 견제와 협력이 이뤄지기에 장기적으로 기업의 생명력을 높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오너십 중심의 한국 기업 경영 문화에는 다소 맞지 않는 방법일 수 있다. 총수 또는 CEO의 자질론이 불거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어 "최 회장의 나이를 고려하면 후계 승계를 차근히 준비할 시점이기는 하다"며 "지배구조 혁신은 소유, 경영까지 포함한 큰 틀에서의 그림을 새롭게 그리는 방안을 염두한 포석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