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다시 해외출장길에 오른다. 최근 두 달 사이 세 번째 글로벌 현장 행보다.
[변윤재 기자]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가전과 모바일·IT, 반도체로 운영되던 조직을 10년 만에 DX와 반도체로 재편하고, 각 부문 수장을 한꺼번에 교체하는 강수를 띄웠다. 뉴삼성에 대한 의지가 강력하다는 방증이다.
특히 이 부회장은 선친과는 다른 방식으로 삼성을 이끌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일상적인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총수로서 인수합병(M&A), 설비 증대, 전략 투자 등 굵직굵직한 사안을 챙기며 차세대 성장 동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이 부회장의 대외 행보가 넓어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해외시장을 직접 둘러보며 M&A를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첨단 기술력을 확보하는 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출장에서도 이 부회장은 삼성을 둘러싼 경영 리스크를 줄이고 미래준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오는 27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주요 대기업 총수 간담회를 마치고 출장길에 오른다. 현재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 의혹으로 매주 목요일 재판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이 오는 27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겨울철 휴정기를 갖는다. 이 부회장은 모처럼 다음달 12일까지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때문에 아랍에미리트(UAE) 출장과 달리 여러 지역을 두루 살피고 올 가능성이 크다.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는 중국이 꼽힌다. 올해 3분기 기준 지역별 매출액을 살펴보면, 중국 30.2%, 미국 29.0%, 아시아·아프리카 16.5%, 유럽 12.7% 순으로, 중국의 비중이 단연 높다.
중국 매출은 중국 스마트폰, IT기업에 반도체, 디스플레이와 같은 부품을 공급하면서 발생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중국은 자국기업에 대한 충성도가 유독 강한 시장”이라며 “탄탄한 내수를 바탕으로 중국기업들은 매년 견조한 실적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중국업체들의 수요를 잡기 위해 공들여왔다. 현지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시안과 쑤저우에 메모리반도체와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시안 공장은 삼성전자가 해외에서 유일하게 운영하는 메모리반도체 생산기지로, 150억달러(약 17조8000억원)를 투자해 생산량 증대를 추진 중이다.
중국시장은 공급망 관리에서도 요충지다. 쑤저우에 가전·전자·오디오제품 공장, 톈진에서는 슬롯 무료 게임·디스플레이·통신제품 공장, 단동에는 오디오제품 공장을 운영 중이다. 베이징과 난징, 선전, 광저우 등지에 연구개발(R&D) 조직도 갖고 있다. 중국 생산기지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을 경우, 적잖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때문에 이 부회장은 지난해 5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 속에서도 시안 공장을 직접 챙겼다.
현재 중국 상황은 심상치 않다. 중국은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이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저장성은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문제는 텐진 등지에서 공장 셧다운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2008년 중국은 베이징 인근 공장을 일제히 셧다운 시켰다. 이번에도 올림픽 선수단 입국이 이뤄지는 시점에 맞춰 일시적으로 대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공장 문을 닫게 하는 초강수를 둘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중 무역갈등 장기화에 중국발 변수까지 더해지면서 이 부회장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이 부회장은 미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투자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중국에서 다양한 협력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안 제2공장 완공을 앞둔 만큼, 신규 수주의 가능성도 함께 타진한다. 특히 중국 소비재 시장에서 삼성의 브랜드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거느린데다, 중산층 이상의 소비여력이 상당한 시장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가전, 슬롯 무료 게임,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분야에서 10년 넘게 점유율 0%대를 기록 중이다. 이에 한종희 DX부문장(부회장) 직속으로 전담조직을 꾸려 현지 마케팅을 강화할 계획이다.
UAE 출장길에 들리지 못했던 유럽으로 향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유럽은 삼성전자 미래 전략에 필요한 기술이 집결된 곳이다. 초미세공정 기술력을 좌우할 장비부터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혁신 기술이 망라돼있다. AI·자율주행·5G 등 기술 고도화를 타진하고, 파운드리 경쟁자 대만 TSMC를 꺾기 위해서라도 협력을 더 강화해야 하는 요충지인 셈이다. 지난해 10월 이 부회장은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령 속에서도 유럽으로 향했다.
이 부회장이 유럽행 비행기에 오를 경우, 지난해처럼 네덜란드와 스위스 등을 다녀올 것으로 예상된다. 네덜란드에는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이, 스위스에는 차량용 반도체 선두기업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NXP가 자리해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제2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면서 미세공정을 도입키로 했는데, 미세공정의 핵심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이전보다 더 많이 사들여야 한다. 다만, EUV 장비를 상용화한 곳은 ASML가 유일한데다, 이 마저도 연간 40대 수준만 생산된다. 때문에 대당 가격이 1500~2000억원 안팎의 초고가에도 사겠다는 업체들이 줄을 섰다. SK하이닉스가 EUV 공정을 도입했고, 인텔, 마이크론, 난야테크놀로지 등도 EUV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이 부회장은 EUV 장비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일찌감치 ASML과 협력을 다져왔다. 삼성전자는 ASML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 지분 1.5%를 보유 중이다. 이 부회장은 수시로 ASML 경영진과 만나 우호관계를 다지고 있다. 2019년 2월 ASML 경영진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 의견을 나눈 데 이어, 지난해에도 네덜란드 본사를 찾아 피터 버닝크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주요 경영진과 협력 강화를 논의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이번에도 ASML을 찾아 장비 선점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스위스에서 파운드리 분야 협력을 다지는 데 무게를 둘 전망이다. 최근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삼성전자에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 생산을 맡겼다. MCU는 스마트폰 핵심부품으로 삼성전자가 이 제품 수주를 받은 것은 2017년 네덜란드 NXP 이후 4년 만이다.
지금껏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핵심 고객사에 납품하는 MCU를 직접 생산했던 것을 고려하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기술력에 대해 글로벌 고객사들의 신뢰가 높아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3분기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 53.1%, 삼성전자 17.1%다. 두 회사 간 격차는 3배 이상이다. 삼성전자는 초미세공정으로 차세대 반도체 물량을 수주하는 것만으로는 점유율 싸움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 최근 7㎚(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상 성숙 공정에서도 기술력을 강화해 매출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반도체 공급난이 내년까지 지속될 전망이라,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따라 다른 업체들도 TSMC에 몰아줬던 성숙 공정 물량을 삼성전자에 나눠 주문을 넣을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M&A 가능성을 다각도로 타진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삼성전자는 차량용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 중이다. 업계에서는 전 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2030년 1100억달러(약 130조13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 다만 탑승자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신뢰성을 갖춰야 하고, 한번 공급사로 선정되면 잘 교체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NXP,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기존 업체들이 과반 이상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NXP,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해 점유율을 끌어올릴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M&A 효율성을 재검토하는 한편, 경쟁당국의 승인 여부도 살펴야 한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를 공식화했지만, 아직까지 기업결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이 해당 인수 건을 ‘중국 산업에 영향을 줄 만한 사안’으로 판단하고 면밀하게 살피면서 승인이 지연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NXP,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M&A 과정에서의 변수까지 시야에 넣고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 부회장이 공격적 경영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제품과 서비스의 수요층이 해외로 확장된 만큼, 세계 어느 곳에든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초국가전략에 무게를 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이 경영 보폭을 넓혀 반도체와 DX 등 핵심사업과 관련한 역량을 고도화·다각화할 수 있도록 선봉장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사법리스크로 인해 이 부회장의 활동 반경이 국내에 치중됐던 느낌이 강했다”며 “글로벌기업답게 괄목할만한 아젠다를 보여줘야 하는 시기가 왔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이 글로벌 밸류체인을 포함해 성장엔진을 찾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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