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정치권에서 결정하는 일이라 기업이 가타부타 말을 할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잘 넘기길 바랄 뿐이죠.”

[변윤재 기자] 밤이 길어지는 추분(秋分)이 지나면 경영계에 긴장감이 감돈다. 매년 10월 국정감사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주무부처나 공공기관장들이 주로 불려갔던 국감장에 최근 기업인들이 서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다. 상임위별로 국내 주요 기업 경영진은 물론, 총수까지 증인 소환을 추진하고 있다. 하반기 들어 경영시계가 불투명해진 가운데 국감까지 준비해야 하는 기업인들은 편치 않은 분위기다.

기업인들로 북적이는 여의도

정부의 규제를 받거나, 범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산업군일수록 주무부처 출신을 영입해 대관능력을 갖춰왔다. 통신사가 대표적이다. 국가 인프라 성격이 강한데다, 사고가 발생하면 서비스 지연에 따른 직·간접적 피해가 발생한다. 안정적인 통신 품질을 유지하도록 관련 규제들이 뒤따른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국가 전략산업도 대관을 중시한다. 수출 효자품목이지만 이들 산업은 새 공장을 짓는 게 만만치 않다. 제조 과정에서 특수물질을 사용하는 까닭에 유해성에 대한 우려가 있어서다. 지역 주민들 외에 환경·사회단체들을 설득해야 하기에 지자체,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기업과 지자체·주무부처·국회 사이에서 의견을 조율할 전담자에 힘을 주는 이유다.

그러나 요즘 들어 대관 인력들의 주 활동무대는 국회다. 산업 생태계 강화를 위한 입법 로비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배경으로 국감이 꼽힌다. 국감을 통해 언론과 유권자에 눈도장을 찍으려는 의원들이 늘어나면서 기업인들이 타깃이 되고 있다.

실제 국감 증인으로 채택된 기언입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7대 국회만 해도 기업인 증인은 연평균 52명 수준이었다. 18대 77명, 19대 125명, 20대 159명으로 국회에 호출당한 기업인들 수가 증가하고 있다. 기업인 출석이 연례행사처럼 굳어진 셈이다. 그렇다 보니, 국감 증인명단에서 최고경인인(CEO)을 비롯한 경영진을 제외시키기 위해 기업들마다 대관 역량을 집중하고 있어서다. 기업 대관 담당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여름휴가는커녕, 추석 때도 편히 쉬지 못했다”며 “국감 방어를 얼마나 잘하느냐, 즉 증인으로 소환되느냐에 따라 1년 업무 성과가 판가름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기업인 소환이 필요한 때도 있다. 빅테크 갑질이 여기에 해당한다. 국내외 플랫폼 기업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급성장했지만,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시장 지위를 악용해 중소 규모의 국내 업체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과방위)는 국내외 플랫폼 기업들을 불렀다. 카카오, 네이버, 카카오모빌리티, 구글, 넷플릭스, 애플, 페이스북, 우아한 형제들의 수장들이 이용환경 개선, 납세 이행, 소비자 권익 증진 등에 대해 추궁 받았다.

이후 카카오모빌리티는 대리운전업체 추가 인수를 철회했고, 카카오는 그룹 차원에서 상생안을 내놨다. 구글, 애플, 넷플릭스 같은 해외 플랫폼 기업들은 국내 업계와 상생 성장을 내걸고 스타트업 지원, 개발자 양성, 콘텐츠 생태계 조성을 약속하기도 했다.

올해 국감에서 다뤄질 기업 관련 현안들 중에도 일단 기업과의 논의가 필요한 주제가 포함돼 있다. 사내 성추행, 중대재해 방지 대책, 노사 문제, 제품 불량 조치 과정에서의 소비자 기만행위,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부담 가중, 배달앱 수수료 등 개별 기업의 자정을 기대하기에 관행으로 굳어진 문제들이다.

통신사의 5G 품질 개선, 중간요금제 세분화 또한 소비자단체 등을 중심으로 우려가 제기돼 온 사안이다. 국내 이동통신 3사가 비통신을 미래 먹거리로 집중 육성하고 있어, 통신 인프라 투자를 포함한 사업 현황을 짚어볼 만 하다.

입법부나 행정부의 조력이 절실한 문제도 있다. 탄소 중립,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칩4), 인앱 결제 강제, 망 사용료 거부에 해당된다. IRA와 칩4는 미국 정부의 정략적 의도와 맞물려 기업 대관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인앱 결제 강제와 망 사용료 거부는 미국 기업들이 국내법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탄소 중립의 경우, 범정부 차원에서 재생에너지 확충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실제 과방위는 이번 국감에서 구글, 애플을 소환, 국내에서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도 관련법 준수 의지를 보이지 않는 점을 캐물을 예정이다.

다만 국감장에서 다뤄지는 기업 현안이 모두 생산적인 건 아니다. 지극히 정략적인 의도로 기업인을 부르기도 한다. 태풍 힌남노에 의해 침수 피해를 입은 포스코는 사전 대비 소홀을 이유로 국감장에 불렸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전 정권 인사인 최 회장에게 책임을 물어 사임으로 몰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보여주기식 국감을 지향하는 행태도 여전하다. 구글, 애플이 이번 국감에 불릴 예정이지만, 정책 개선이 이어지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내 IT업계는 구글, 애플의 인앱 결제 강제 정책에 따라 이미 콘텐츠와 서비스 가격을 상향 조정했다.

“진짜 어렵다“ 호소에도 플래시에 집착하는 의원들

국내 경기 전망은 부정적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이 지속되는 가운데 원화 가치가 하락해서다. 원재료나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만든 뒤 수출하는 형태가 적지 않은데, 환율이 오르면 수입단가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연말까지 금리 인상이 지속될 전망이라, 현금 유동성 우려도 제기된다.

경영계에서는 기업들의 실적 악화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전국슬롯머신 무료게임 리뷰인연합회(전경련)가 매출액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조사한 결과, 10월 BSI 전망치는 89.6을 기록했다. BSI 전망치가 기준선인 100보다 낮으면 전월보다 경기가 호전될 가능성이 적다는 의미다.

BSI 전망치는 4월(99.1)부터 8월(86.9)까지 5개월 연속 하락세였다. 9월 95.8로 반등했던 것도 잠시, 한 달 만에 다시 80대로 하락했다. 9월 BSI 실적치도 86.0으로, 올 2월(91.5)부터 8개월 연속 기준선 100을 밑돌면서 실적 가뭄이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특히 제조업(88.4)과 비제조업(91.1)이 지난 6월부터 부진한 가운데 전자·통신, 자동차·기타운송, 석유정제·화학 등 국내 3대 수출품목이 동시에 주춤하면서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슬롯머신 무료게임 리뷰에 침체의 골이 깊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생존 전략에 몰두해야 할 시점에 국감 대응까지 준비해야 하는 기업들은 내심 불편한 기색이다. 증인 명단을 확정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의 경우, 이재승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사장), 공영운 현대차 사장, 정탁 포스코 사장, 최수연 네이버 대표, 윤진호 교촌 대표, 임영록 신세계 프라퍼티 대표, 김범준 우아한 형제들 대표를 비롯해 기업인들을 줄줄이 소환했다. 증인 11명, 참고인 7명 등 18명이나 된다. 정책국감을 지향한다고 보기에는 범위가 넓다.

국감은 국회가 국정 전반에 걸쳐 조사를 실시함으로써 행정부를 건강하게 견제·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재의 국감은 언론의 플래시를 의식하는 의원들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형식적 감사에 급급하다는 비판이다. 여의도 정가 인사는 데일리임팩트에 ”국감 스타로 뜬 뒤 존재감이 달라진 의원들이 있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서 모종의 뜻을 품고 있다면, 국감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며 ”이름 알리기에 급급하다 보니, 국감의 실질적 기능이 빛 바란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국회는 매번 보여주기식 망신주기식 국감을 지양하겠다고 다짐했다. 허나 뉴스메이커에 의존하는 국감 행태는 개선되지 못했다. 이런 까닭에 국감장에 불려가는 기업인과 임직원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밤늦게까지 12시간 넘게 진행되는 일이 부지기수이고, 자신을 증인으로 부른 의원이 호출할 때까지 5분 대기조 신세다. 의원의 질의에 답변이라도 할라치면 날벼락을 맞기도 한다. 입도 떼지 못하고 다른날 다시 불려가는 일도 있다. 반론권이 보장되지 않고, 출석을 거부할 수 없는 국감을 준비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짧으면 1~2주, 길면 한 달도 걸린다.

익명을 요구한 대기업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10월만 되면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라며 ”CEO가 사업의 디테일한 부분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게 아닌데 질문에 답을 못하면 그걸로 트집이 잡히니 CEO들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일은 잘해도 조리있게 말하지 못하는 CEO들도 있고, 애초에 대중 앞에 나서길 즐겨하지 않는 부류도 있어서 준비가 쉽지 않다”면서 ”대관이 의원 동향을 참고해 예상 질문지를 뽑고 홍보나 기획 인력이 여러 번 리허설을 하며 연습하는 경우도 있다. 9월, 10월에는 국감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하소연 했다.

‘그나마 증인으로 채택되면 낫다‘는 말도 나온다. 일부 의원은 국감을 지역 민원 해결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한다.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거나, 기업의 넓은 네트워크를 빌려 생색내기용 예산을 확보하는 식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기업인 소환을 최소화 하겠다고 밝혔지만, 가능할지 미지수다. 국회 과반을 점하고 있는 민주당이 기업인 증인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어서다. 일례로 더불어민주당 측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국감장에 세우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신계계 광주 진출, 스타벅스 여름 한정 굿즈 유해물질 검출 논란을 이유로 들었지만, 경영계에서는 정 부회장의 멸공 발언을 추궁할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교통일위원회, 정무위원회처럼 증인 채택 의결을 앞둔 다른 상임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재계 4대 그룹 총수를 부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