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구자은 LS그룹 회장은 지난달부터 주요 계열사를 점검하고 있다. 무려 3달에 걸쳐 충청·경상·전라지역 14곳의 자회사·손자회사까지 훑는 일정이다. 주력 사업과 신사업의 동반 상승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현장의 ‘한 끗’을 찾겠다는 구상이다.
[변윤재 기자] 주요 기업 대표선수들이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대내외 경영 불확실성의 파고가 커지자 중장기 경영 전략만으로는 다양한 변수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졌다. 세밀하게 의견을 조율하고 상황을 제어하기 위해 기업 총수들이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네덜란드행을 확정했다. 지난 31일 삼성호암상 시상식에 6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 조만간 현장 경영을 재개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이날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재판에서 향후 2주 간 재판 불출석 의견서를 냈다. 이 부회장은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관련 협의 차 네덜란드 출장이 필요하다는 뜻을 재판부에 전달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20년 10월에도 네덜란드를 다녀왔다. 유럽은 당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세로 몸살을 앓을 때였다. 하루 평균 확진자 수가 10만명을 웃돌았다. 이 부회장의 출장기간에는 3월 이후 최다 확진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출장을 감행해야 할 만큼 삼성전자를 둘러싼 상황이 좋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번 출장도 다르지 않다. 이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장기화 되고 문재인 정부 마지막 사면까지 무산되면서 삼성전자 안팎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주력인 반도체 사업에 대해 시장에서는 ‘경쟁사와 기술 격차가 줄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모리반도체는 경쟁사에 최초 타이틀을 내줬고, 위탁생산(파운드리)는 수율에 발목 잡혔다. 시스템반도체는 ‘확실한 1등‘을 내지 못한 채 성능 문제가 불거졌다.
문제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분야에 대형 투자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2026년까지 국내에만 360조원이 투자하는데, 대부분이 반도체에 들어간다. 사업 경쟁력에 대한 우려를 고려하면, 체계적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반도체 사업의 방향성을 다잡고 투자 효과를 높여야 한다. 동시에 국내외에서 다각적 협력을 통해 사업 기회를 더 만들어야 한다. 큰 그림과 디테일을 함께 챙길 수 있는 ‘총수‘가 필요한 셈이다. 이 부회장이 취업제한 논란을 무릅쓰고라도 경영 최전선에 나서기로 결심한 이유다.
이 부회장은 EUV 노광장비 확보전을 이끌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EUV 노광장비를 활용해 미세공정 기술력을 강화했다.
반도체는 웨이퍼 위에 광선으로 쏘아 미세회로를 반복해서 그려 넣는 ‘노광공정’을 거친다. 회로의 선폭은 머리카락의 10억분의 1에 불과하다. 미세하게 그려 넣을수록 반도체 성능과 효율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노광공정 횟수를 줄여 원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가시광선보다 빛의 파장이 짧은 EUV가 쓰인다. EUV는 기존 불화아르곤(ArF)의 14분의 1에 불과하다.
다만 인공지능(AI)과 차세대이동통신, 자율주행 같은 첨단 기술의 활용처가 늘면서 고성능·저전력·초소형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고, 이에 필수적인 EUV 노광장비를 찾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세계 각 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파격적 지원을 내걸은 것도 EUV 노광장비 몸값을 높였다. 부품 품귀현상으로 EUV 노광장비 생산기일마저 길어졌다.
경쟁은 치열하지만 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곳인 ASML 뿐이다. 연간 생산량은 40대 안팎, 이 역시 2년은 기다려야 한다. 매년 ASML 생산량의 절반 가량은 TSMC가 가져가는 만큼, 삼성전자도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당장 이달 미국 테일러 파운드리 착공을 앞둔데다, 초미세 공정에 힘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3나노(㎚·1나노미터는 10억분의의 1m) 제품 양산과 차세대 D램 개발을 위해 EUV 노광장비를 예년보다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 이 부회장은 입도선매를 위해 ASML 경영진에게 장비 추가 공급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장에서 기회를 만드는 총수는 이 부회장만이 아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달 중 일본으로 향한다. 최 회장은 지난달 한일의원연맹 대표단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일본을 찾겠다는 뜻을 밝혔다.
반도체는 SK그룹을 이끄는 축이다. SK그룹은 앞으로 5년간 반도체·소재 분야에 142조2000억원을 투자해 사업 고도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반도체 장비와 소재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서야 하는 시기인 셈이다.
일본은 반도체 장비·소재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한국 기업들의 의존도가 높다. 최 회장은 일본에서 반도체 장비·소재 기업과 협력을 다지며 투자 밑그림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 또한 그룹을 둘러싼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 전문경영인에게 힘을 실어줘 ‘외유’를 대비했지만 총수 공백은 상쇄할 수 없었다. 새 정부 출범, 탄소 중립 요구에 맞춰 그룹의 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SK쉴더스, 원스토어가 줄줄이 상장을 철회하면서 그룹의 가치에 악영향을 끼쳤다.
최 회장은 현장에서 미래 먹거리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는 모습이다. 그룹의 성장 방향성을 정립하고 세부 실행계획을 수정하고자 디테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최 회장은 지난 4월 SK박미주유소, SK인천석유화학단지를 찾았다.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동행한 SK바이오사이언스까지 포함하면 총수 자격으로 찾은 현장만 3곳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대외 행사에 참석한 것까지 합하면 빡빡한 일정이 이어졌지만 총수로서 대외 행보를 늘려가고 있다.
내연기관 시대의 종말을 앞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발걸으도 바쁘다. 코로나19 확산에도 그는 올해만 벌써 3번 미국을 다녀왔다. 지난 4월 미국 뉴욕 오토쇼를 찾아 세계 유수 완성차업체들의 전동화 현황을 살피고 현지 시장 상황을 점검했다. 곧이어 유럽에서 현지 사업을 살피고 고객사와 협의를 이어갔다.
현대차그룹은 전동화·친환경·로보틱스·미래 항공모빌리티(AAM)·자율주행을 성장 동력으로 키우고 있다. 국내외에서 약 76조원을 투자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수요가 많은 북미 시장을 겨냥해 전기차 생산거점을 만들고 도심항공모빌리티(UAM)·자율주행·AI·로봇·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내재화하겠다고 밝힌 점을 고려하면, 조만간 미국 출장길에 다시 오를 가능성이 높다.
총수들의 현장행이 잦아진 이유로는 슬롯머신 무료게임 팁 불안이 꼽힌다.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통계청의 4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전 산업생산지수 잠정치는 116.4로 전월 대비 0.7% 줄었다. 소매판매액지수 잠정치도 0.2% 감소한 119.7이었다. 설비투자 잠정치 역시 7.5% 하락해 109.2에 머물렀다. 코로나19 이후 26개월 만에 생산·소비·투자지표가 동반 하락한 셈이다. 앞으로의 경기 흐름을 보여주는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의 4월 잠정값 또한 10개월 연속 하향곡선을 그치며 99.3에 그쳤다.
전 세계적인 공급망 교란에 수출은 여의치 않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재무 부담이 가중됐다. 경기 회복을 낙관하기 어려운 현재, 총수들은 야전 사령관을 자청하며 강행군을 밀어 붙이고 전망이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데일리임팩트에 “생산·소비·유통에 걸쳐 공급망이 매우 불안정한 상황에 기업들이 파격적 투자를 단행한 것은 성장엔진을 예열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투자 효과와 장기 동력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 만큼, 큰 그림을 그리는 총수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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