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석 기자] 행동주의펀드들이 집중투표제나 3%룰 등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지난해보다 전략적으로 접근한 것이 성공요인이라는 분석이다.

1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12일부터 현재까지 지난해 12월 결산 상장법인 2614개사 중 약 80%인(2086개사)가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주총을 마친 상장법인 가운데 태광산업과 JB금융지주, KT&G, 금호석유화학, 삼성물산 등이 올해 행동주의펀드의 주요 타깃이 됐다.

행동주의펀드들은 해당 기업에 △이사 후보 추천 및 증원 △자사주 매입·소각 △배당금 확대 등 주주환원책과 지배구조 개선 요구에 나섰다. 자사주 매입·소각과 배당금 안건은 부결됐지만 사외이사 선임 안건이 받아들여져 의미있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이사회 진입' 성공한 트러스톤·얼라인·FCP

일부 행동주의펀드들은 사측에 이사 선임 안건을 제안하고, 집중투표제 등 제도를 활용해 이사회에 진입하는 성과를 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지난달 30일 개최된 태광산업 정기 주주총회에서 3명의 사내와 이사 후보(김우진·안효성 사외이사, 정안식 사내이사)를 추천해 이사회에 진입시켰다. 태광산업이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를 선임한 건 지난 2007년 장하성 펀드 이후 17년 만에 처음이다.

트러스톤은 지난해에도 태광산업에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제안했으나 해당 안건은 이사회를 통과하지 못해 주총에서 다뤄지지 조차 못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JB금융지주를 상대로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추천한 5명의 이사 중 2명(김기석·이희승 후보 2인)의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국내 금융지주 사상 주주 제안으로 이사를 선임한 첫 사례다.

얼라인은 지난해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에 실패한 이후, 올해 주주총회에서 사측에 선임하는 이사 수 만큼 의결권을 부여하고, 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를 활용했다. 결과적으로 집중투표제 도입과 주주들의 지지를 받으며 얼라인이 추천한 두 후보는 5명의 이사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득표율 1·2위를 차지했다.

FCP(플래시라이트캐피탈)는 KT&G에 최대주주 IBK기업은행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를 지지하면서 독립된 사외이사선임에 기여했다.

당초 FCP는 KT&G에 이상현 FCP 대표를 사외이사 후보로 제안했으나 이 후보가 기업은행이 제안한 사외이사와 표 분산을 막기 위해 자진사퇴하면서, 기업은행측 후보 지지에 나섰다.

기업은행이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한 손동환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FCP의 지지와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3명의 이사 후보 중 방경만 신임 대표이사에 이은 2위를 차지해 이사로 선임됐다. FCP와 기업은행은 비록 반대해오던 방경만 대표이사 선임을 막는데는 실패했으나, 제한적으로나마 경영진에 대한 견제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FCP는 KT&G 주총 이후 보도자료를 통해 "손동환 이사 선임은 모든 주주들의 승리"라며 "주주을 위한 CC슬롯머신 무료게임 보너스 역할을 하는 밸류업 성공사례로 남길 바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차파트너스·안다자산, 주주환원 관련 주주제안 모두 부결

반면 올해 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펀드가 제안한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관련 안건은 부결됐다.

차파트너스자산운용은 경영권 분쟁 중인 금호석유화학에 고(故)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의 장남인 박철완 전 상무와 손 잡고 자사주 소각 등 3가지 안건을 제안했으나 모두 부결됐다.

차파트너스가 사측에 제안한 3가지 안건은 △주총 결의로 자사주를 소각할 수 있게 하는 정관 변경의 건 △자사주 전량 소각 △사외이사 후보 추천 등이 었다.

특히 주총 내 '뜨거운 감자'였던 자사주 소각의 경우, 사측 의안인 자사주 50% 소각안은 찬성 74.6%, 차파트너스의 제안인 자사주 100% 소각안은 찬성 25.6%로 사측 안이 통과됐다.

삼성물산을 상대로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을 요구했던 안다자산운용과 시티오브런던 등 5개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환원 강화 캠페인도 무위로 돌아갔다.

앞서 이들은 삼성물산에 5000억원 어치 자사주 매입과 함께 보통주와 우선주에 대해 주당 각각 4500원, 4550원씩 배당할 것을 요구했다. 배당금의 경우 사측이 제시한 2550원, 2600원 대비 약 70% 증액한 수준이었다.

이들의 요구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의 지지를 받으며 통과 기대감이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주총 표 대결 현장에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주들은 삼성물산 이사회가 올린 이익배당 관련 안건에 77% 찬성률로 힘을 실어줬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감사위원이나 이사 선임시에는 지배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3%룰이나, 집중투표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지분이 낮더라도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받으면 주총에서 통과할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며 "다만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 관련 안건은 표결 시 지배주주 의결권 제한이 없어 지분이 적은 행동주의펀드들이 표 대결로 승리하기는 쉽지 않다"고 해석했다.

주총 결과 뿐 아니라 '과정'도 중요...'밸류업' 여파에 행동주의 더욱 활발해 질 듯

일각에선 단순히 주주총회에서 주주 제안 통과 여부만으로 행동주의펀드의 성과를 판단하면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행동주의펀드의 주주활동 과정에서 사측이 '방어' 차원에서 발표한 주주환원정책 역시 하나의 성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차파트너스가 금호석유화학 정기주주총회에 제안한 3가지 안건들은 주총에선 모두 부결됐지만, 주주 제안 이후 사측이 발표한 3개년 자사주 소각 계획은 결국 행동주의펀드의 영향을 일부 받은 것이란 해석이다.

의결권 자문사 한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행동주의펀드가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사측이 자발적으로 주주환원책이나 거버넌스정책도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주총 결과 뿐 아니라 사측의 대응과 행동주의펀드의 개입 후 주가 상승률 등 다각도로 성과를 평가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에 따라 상장사들이 공개할 저평가 개선책의 영향으로 향후 행동주의펀드들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주총에서 행동주의펀드들의 제안은 지난해보다 합리적이고, 집중투표제를 활용하는 등 전략적으로 변했다"며 "밸류업 프로그램에 발맞춰 상장사들이 내놓을 주주환원정책 등 밸류업 방안에 따라 내년에는 행동주의펀드들의 주주활동이 더욱 활발 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