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이달 미국 정부의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유예가 끝나게 된다. 미국 정부는 이번주 중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대해 무기한 유예하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들의 중국 리스크는 줄어들 전망이다.
[변윤재 기자] 2일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가 오는 11일에 만료되는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유예를 무기한 연장하기로 했다.
지난해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중국 반도체 기업에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를 판매할 경우 개별 심사를 받도록 하는 수출통제 조치를 단행했다. 핀펫(FinFET) 기술 등을 사용한 16나노(㎚·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 내지 14나노 이하 로직 칩, 18나노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기술을 중국 기업에 판매할 경우 허가를 받게 했다. 중국 기업이 슈퍼컴퓨터 개발 등에 필수적인 첨단 반도체 제조 능력을 확보할 수 통로를 사실상 차단한 셈이다. 다만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외국 기업의 경우, 중국공장에 필요한 장비는 1년간 허가 없이 반입할 수 있는 유예 조치를 결정했다.
미국이 대중국 견제의 수위를 올리면서 업계에서는 국내 기업에게 불똥이 튈 것을 우려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중국 생산량이 상당해서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공장에서 전체 낸드 생산량의 40% 가량을 양산한다. SK하이닉스 역시 중국에서 만드는 메모리 반도체가 적지 않다. 전체 D램의 40%를 우시에서, 전체 낸드의 20%를 다롄에서 각각 제조한다. 미국 정부가 수출 통제를 유예해주지 않는다면, 중국 공장을 접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고민해야 할 판이었다.
최근 발표된 화웨이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로 인해 이 같은 우려가 더욱 증폭됐다. 7나노 공정을 적용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탑재됐기 때문이다. 중국 반도체 굴기의 상징인 SMIC가 만든 이 칩으로 미국의 고사작전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 입증됐다. 이에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이 "중국이 7나노 칩을 양산할 수 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어떤 기업이든 미국의 수출 통제 조치를 우회했다는 신뢰할만한 증거를 찾을 때마다 조사할 것"이라고 경고성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미국의 제재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다만 지난달 반도체법 가드레일 규정을 최종적으로 발표하면서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다. 보조금 지원 조건을 더 까다롭게 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지만, 지난 3월 공개한 세부 규정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받는 기업은 중국공장의 첨단 반도체 생산 능력을 5%까지 확대할 수 있다. 28나노 이전의 범용 반도체도 10% 내에서 늘릴 수 있다.
때문에 우리 정부는 중국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유예를 재연장하기 위해 미국 상무부와 그동안 협상했다.
이번에 미국 정부가 국내 기업들에 대해 무기한 유예 조치로 가닥을 잡으면서 중국 사업의 불확실성이 일부 걷히게 됐다는 평가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게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지위를 부여해 줄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에겐 지정된 장비의 반입을 기한 없이 허용해주는 것으로 수출 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뜻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보상의 이유로 만든 안전장치인 만큼, 가드레일 조항을 어기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미국 정부가 허용하는 이상으로 반도체 제조 능력을 향상시키면 보조금을 반환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 정부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어놓기 내놓은 조치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할 때, 중국 리스크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반도체 생산 능력을 높인다는 것은 웨이퍼 투입량을 증가시킨다는 의미다. 하지만 미국의 가드레일 규정으로 웨이퍼 투입량이 제한되면 원가경쟁력이 낮아지게 된다. 수익성을 담보하기 녹록치 않아지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미국 정부의 기분에 맞추려면 결과적으로 중국공장을 현재의 수준을 유지하는 데에만 만족해야 한다"며 "중국공장을 운영할수록 부담이 커지는 구조가 될 것이고, 사업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짚었다.
물론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를 무기한 유예 받는다면, 첨단 장비를 도입해 웨이퍼당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제고할 순 있다. 다만 이 또한 불확실하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중국으로 첨단 기술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으려는 미국이 국내 기업들이 원하는 특정 장비 도입을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극자외선(EUV) 장비가 대표적이다.
업계에서는 중국 출구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미국 정부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대중국 제재 수위를 높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까닭이다. 게다가 미국은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보조금을 내세워 국내 기업들의 탈중국을 더 적극적으로 유인할 수 있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는 한 사업 불확실성은 그대로인 것이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일단 한숨 돌린 것은 맞지만 안심할 수 없는 것도 맞다"면서 "활황기엔 우에퍼 투입량을 늘려야 하는데, 중국공장 설비를 개선할 길이 사실상 막혔고, 우리 기업들의 경영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기업들의 주 거래선인 중국 기업과 당장 손절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므로 점진적으로 리스크를 줄이는 최선"이라면서 "사업 재편과 새로운 공급망 구축을 통해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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