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경제슬롯머신 무료게임 고액 배팅 서효림 기자] 기본 계획을 종료한 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KDDX)의 표류가 길어지고 있다. KDDX 사업은 다음 입찰 방식조차 선정하지 못한 채 과열 경쟁으로 얼룩졌다. 군사기밀을 빼내 유죄 판결을 받은 HD현대중공업은 수의계약을, 한화오션은 경쟁입찰을 요구하는 다소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의 고민은 길어지고 있다. 방사청은 군사기밀을 빼낸 HD현대중공업에 면죄부를 주고 기본계획을 맡겨 한국형 구축함의 지연을 야기했다.

KDDX는 선체부터 레이더에 이르기까지 국내 기술로 만드는 첫 구축함 사업이다. 오는 2030년까지 6000t급 한국형 차기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데 투입되는 예산이 7조8000억원 규모다. 모든 단계에서 경쟁이 치열했지만 특히 함 설계와 건조를 두고 HD한국조선해양(당시 한국조선해양)과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의 은근한 기싸움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HD한국조선해양은 HD현대중공업(당시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위해 설립한 중간지주사다. HD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도전했으나 EU의 기업결합 불승인으로 무산된 바 있다.

개념설계-한화오션, 기본설계-HD현대중공업

개념설계는 한화오션이 맡았다. 기본설계는 한화오션을 0.056점 차로 따돌린 HD현대중공업이 맡았다. 이 과정에서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이 KDDX 관련 기밀을 유출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항소심을 통해 혐의가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고, HD현대중공업은 향후 3년간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에서 1.8점을 감점 받게 됐다.

유죄를 받은 HD현대중공업의 기본설계는 계속됐다.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이 빼돌린 자료가 개념설계 자료일 뿐이라며 사업자 선정에 영향이 없다고 일축했다. 당시 방사청장이던 왕정홍 전 청장은 지난 8월 HD현대중공업으로부터 청탁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반려된 후 추가조사를 받고 있다.

군사기밀 빼내 보안감점 받은 HD현대, 전초전서 패해

KDDX 사업 전초전에서는 한화오션이 승리했다. 울산급 배치3의 5번, 6번 호위함을 건조할 사업자를 선정은 기업 결합을 마친 한화오션 오너 3세 김동관 부회장이 직접 나서 소문난 ‘절친’인 정기선 HD현대 사장과 정면대결을 벌여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한화오션은 박빙의 점수차로 HD현대중공업을 제치고 사업을 수주했다. 한화오션(최종점수 91.8855점)과 HD현대중공업(91.7433점)의 종합점수 차이는 0.1422점이었다. 1.8점은 HD현대중공업에 뼈 아픈 감점이었다.

HD현대중공업은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감점제도에 대해 ‘불합리’하다고 했다. HD현대중공업은 “불합리한 보안사고 감점제도로 특정업체의 입찰 참여를 배제시키는 효과가 발생하고 이를 통해 국내 함정사업이 독점 형태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고, 소송전을 벌이는 동안 HD현대중공업이 맡았던 KDDX 기본설계 계획이 종료됐다.

바로잡을 기회 놓친 방사청, 계약 방식 두고 긴 갈등 불러와

이제 KDDX 건조 사업과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단계가 시작돼야 하는데 HD현대중공업의 입찰 자격을 두고 또 다시 싸움이 시작됐다.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 부정당업체 제재 심의를 ‘행정지도’로 의결해 감점은 그대로 하고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단계마다 경쟁입찰을 하지만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는 통상 기본설계를 한 업체가 수의계약을 통해 수행하는 관례로 인해 HD현대중공업이 좀 더 유리한 고지에 있게 됐다.

한화오션은 기업 차원에서 군사 기밀을 유출하고 은닉했음에도 수의계약으로 상세설계 등을 맡길수는 없다고 즉각 반발했다. HD현대중공업은 이미 관련된 직원 9명 모두 유죄가 확정되면서 이미 사법부의 판단이 끝난 사안이라고 받아쳤다. 여기에 각 조선소의 기반이 되는 지역사회가 힘을 더하면서 갈등의 판이 커진 상황이다.

왕정홍 전 방사청장에 대한 조사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계약 방식조차 정하지 못한 채로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는 올해 안에 추진돼야 한다.

2020년 12월 기본설계 계약에 앞서 방사청은 재검증을 통해 계약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왕정홍 당시 방사청장은 법원의 가처분 판결 때문에 불가능했다고 했지만, 이는 제안서 평가 오류에 대한 판결이었을 뿐 평가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방사청 재검증위원회는 “현대중공업이 훔친 개념설계 기밀을 본사업 제안서 작성에 활용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HD현대중공업에 기본설계를 맡겼지만, 법원은 KDDX 개념설계 기밀 절도와 본사업 제안서 작성의 연관성을 인정했다. 처음 잘못 끼워진 단추가 국가 안보의 공백을 부르게 됐다.